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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로봇에 달렸다] (1) 세계는 로봇 전쟁중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14 22:04

수정 2009.12.14 22:04



10∼20년 후 로봇산업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란 명제에 물음표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그만큼 로봇산업을 놓고 세계 주요 국가 간 기술 및 시장선점 경쟁도 치열하다. 중소기업 중심으로 로봇기술을 개발하던 한국에서도 최근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삼성,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적극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민·관 사업화 프로젝트와 범부처 간 로봇 수요창출을 위한 공조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변화를 고려, 파이낸셜뉴스는 주요 대기업들의 전략과 노력을 시리즈로 살펴보고 로봇선진국으로 가는 현명한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지난 11월 27일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일본 자동차업체 ‘혼다’ 전시장. 일본인은 물론 해외에서도 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이곳엔 매일 세차례, 혼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로봇(인간형로봇) ‘아시모(ASIMO)’가 등장한다. 오전 11시 첫 공연. 초등학생 정도 되는 키 130㎝의 아시모가 손을 흔들며 걸어나왔다. 이 로봇은 시속 6㎞ 속도로 달릴 수 있다. 만화 ‘아톰’을 보며 로봇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에겐 이 귀여운 ‘아시모’가 각별한 존재다. 혼다는 로봇 ‘아시모’를 통해 기술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퍼스널 모빌리티로봇을 개발하는 등 유·무형의 미래 기술 가치를 확보해 가고 있다. 목표는 미래 최대 산업이 될 ‘지능형 로봇’의 세계 패권자가 되는 것이다. 세계 로봇시장은 오는 2013년 3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하고 이후 도약기를 거쳐 2018년엔 100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로봇기술과 타 산업의 융합으로 창출되는 신시장이 로봇 자체시장의 2∼3배에 달할 것이라는 기대다.

이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일본, 미국, 유럽연합(EU) 등 로봇 선진국 간에 치열하다. 이들 국가들은 지능형 로봇 개발을 국가 어젠다로 채택, 중앙정부와 민간 대기업들이 합력해 기술확보를 위해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미·EU, 미래로봇 기술 확보전 치열

일본은 인간에 가까운 ‘두 팔을 가진 로봇’ 등 차세대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가사보조, 간병용 생활지원로봇을 오는 2010년께 상용화한다는 계획. 지난 5월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 노동인구 감소, 삶의 질 향상을 실현하기 위한 로봇전략기술로드맵을 발표했다. △차세대 산업로봇 △노인간병 등 서비스로봇 △건설·수중작업 등 필드로봇 분야와 이에 따른 필요기술 개발이 핵심이다.

미국은 국립과학재단(NSF)이 주축이 돼 지난 5월 국가로봇기술로드맵을 발표했다. △제조용 △건강·의료 △서비스로봇을 3대 로봇 목표시장으로 정하고 장기적·지속적인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이는 미국의 로봇 분야 연구개발(R&D) 투자가 국방 무인시스템에 국한돼 있다 보니 미래에 세계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로봇 원천기술에 기반한 성공모델을 만들고 있다. 미국의 로봇업체 아이로봇(iRobot)은 정찰로봇인 팩봇(Packbot)을 전 세계에 2000대 이상 판매하는 등 상업로봇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청소로봇 룸바(Roomba)도 350만대 이상 팔았다. 의료로봇 시장에선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칼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복강경수술 로봇인 다빈치 시스템을 5년 만에 전 세계에 1200대 파는 등 지난해 매출이 1조원을 넘었다.

EU는 제조용 로봇 핵심 요소기술을 집중 개발, 이를 전문서비스용 로봇으로 확장하고 있다. EU는 ‘프레임워크 프로그램(FP)’를 통해 지난 2007년부터 올해까지 37억2000만유로의 R&D 투자를 집행 중이다. 제조로봇 기술 기반이 되는 인지시스템, HRI(인간-로봇 상호작용) 등 로봇 소프트웨어(SW)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감성, 로봇지능, 행동제어 등 고난이 기술들이다. 이는 첨단생산시스템, 가사로봇, 네트워크로봇, 실외로봇, 건강의료로봇 등 5개 핵심 분야로 정한 EU의 로봇연구 로드맵에 따른 것. 상용화는 빠르지 않지만 뛰어난 SW, 원천기술이 EU의 저력이다.

중국도 잠재된 로봇 강국이다. 오는 2020년을 내다보고 지난 2006년 계획한 ‘중장기 기술개발 프로그램’에 로봇산업을 첨단제조기술 분야로 집어넣었다. 오는 2010년 휴머노이드로봇, 노인·장애인 지원 로봇 등을 개발한다는 계획으로 현재 활발한 R&D가 진행 중이다. 특히 중국의 강점인 우주개발, 극지개발, 해양탐사 등에 투입할 전문 서비스용 로봇 개발도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은 로봇 핵심기술 확보 못해 격차 커져

우리 정부는 지난해 ‘지능형로봇 개발 및 보급촉진법’을 만들고 오는 2013년까지 1조원을 투입해 ‘로봇 3대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로봇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 2002년 이후 7년간 총 5748억원(연평균 821억원) 예산을 로봇산업에 쏟아부었다. 유럽과 일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정부 지원 하에 로봇산업을 확장해 왔다. 그 결과 중소업체 위주의 로봇산업이 형성됐고 민간자본의 로봇산업 투자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올 들어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현대, 삼성 등 대기업들이 로봇산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삼성전자는 ‘청소로봇’을 혼수 가전의 하나로 TV광고를 시작하고 해외 시장에도 진출했다. 현대자동차는 로봇연구소를 세우고 지능형로봇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전문 서비스로봇 분야에선 단기간 내 상용화하는 민·관 사업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삼성테크윈의 경계감시로봇시스템, 큐렉소와 현대중공업이 함께하는 인공관절 수술로봇 ‘로보닥’은 내년 상반기에 가시적인 성과가 기대된다. 또 융·복합 기술 특성상 로봇협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산기술연구원, 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6개 로봇 국책 연구기관과 로봇업계가 ‘로봇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술협력 네트워크’를 구축, 협업을 약속한 일은 고무적이다.

범부처 간 로봇 수요창출을 위한 공조도 확대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년에 100억원을 투입, 전국 400여개 유치원에 ‘유아교육용 로봇’을 교사 도우미로 투입하는 ‘R-러닝(로봇기반 학습)’이 대표적이다. 로봇업계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자동차, 조선, 등 로봇 활용도가 높은 기간산업과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가 경쟁력”이라며 “범정부 차원에서 초기시장 창출 방안을 찾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는 부문에서 특화한 로봇을 제품화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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